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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달

새벽에 깨어나 벽시계를 보니 3시 30분. 창켠이 환하다. 달이 서쪽 하늘에 떠 있다. 참 오랜만에 보는 달이다. 왠지 이물감이 든다. 너무 오랜 동안 달이 있는지초자 잊을 정도로 달과 멀리하고 살았던가싶다.

도시의 삶이란 하릴없이 바쁘다. 달을 보지 않고 살아도 아무렇지도 않다. 잠을 마저 자려고 이불을 끌어당기다가 문득 달이 둥그런 모양임을 깨달았다. 2퍼센트 부족한 보름달이다. 하루 이틀 더 있으면 꽉 찬 보름달이 될 터이다. 일년 중에도 가장 크게 보인다는 추석 보름달.

잠은 달아나고 나는 달에 홀린 사람 마냥 눈길을 달 쪽으로 향한 채 이 생각 저 생각에 붙들려 달을 쳐다본다. 영국 시인 흄이 ‘놀다가 잃어버린 어린아이의 풍선’에 비유한 달을 노래한 싯귀가 생각난다. 풍선을 놓쳤을 때의 안타까움, 풍선은 높이 멀리 떠올라 아까까지도 내 것이었던 세계를 떠나 어찌할 수 없는 다른 세계로 가버리는 풍선. 열사나흘 달은 그렇게 멀리 홀로 천공에 떠 있다.

달을 한참 바라보노라니 달이 먼저 내게 대화를 요청하는 것 같다. 순간 달과 나 사이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 텔레파시로 오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지금 이 순간 달은 온전히 나하고의 관계로 떠 있다. 그러기에 새벽에 내가 잠을 깼고 일어나 달을 마주하게 되었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달은 매양 다니는 길로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구 쪽에서 보면 계절마다 조금씩 다른 쪽에서 뜨고 진다. 뜨는 시각도 매일 밤 다르다. 인간 역사에서 가장 오랜 동안 ‘검색 1위’가 달이었을 것이다. 달을 빼고서 밤을 생각할 수 없다.

‘정읍사’의 남편을 기다리는 옛사람에게도, 삶에 시달리는 지금 사람에게도 그러하다. 이 지구별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달을 보며 노래하고 술을 마시고 울음을 울고 말을 걸고 그랬을까.

옛사람들은 ‘달아 달아 밝은 달아/이태백이 노던 달아’라고 노래했다. 이백이 달에 대해 쓴 시편들이 널리 알려졌음이라. 이백의 달에 관한 시에서 ‘술잔을 들고 달에게 묻다(把酒問月)’란 시.

지금 사람들은 옛날의 저 달을 보지 못하지만(今人不見古時月:금인불견고시월)/지금 저 달은 옛 사람들을 비추었으리라(今月曾經照古人:금월증경조고인)/옛사람이나 지금사람 모두 흐르는 물과 같지만(古人今人若流水:고인금인약류수)/모두가 이처럼 밝은 달을 보았으리라(共看明月皆如此:공간명월개여차)라는 구절이 내 마음으로 뻗어오는 달의 손길 같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 잠 안 오는 밤 깊은 고독감에 잠겨 달을 쳐다보며 회포를 풀다가 사라져 가는 존재 그 이상이다. 하늘에 홀로 떠서 밤에 잠 못드는 사람들의 창으로 흰 손을 뻗어 고독한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달. 부자도 가난한 자도 권력자도 노동자도 달을 보는 이 순간은 그저 한 순간을 살다 가는 가련한 존재일 따름.

달은 지구별에 다녀가는 사람들의 게시판이다. 달에는 옛사람들의 노래와 시와 외로움이 새겨져 있으며, 지금 사람들의 슬픔과 눈물과 괴로움이 새겨져 있다. 읽을 수는 없지만 그런 대자보들을 써놓은 달을 짐작해볼 수 있다. 달에 당신의 슬픔을 맡겨두라. 언제까지나 달은 나를 위로해주리라. 뭐, 그렇게 달을 생각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달이 참 신기한 것은 골목길을 걸어갈 적에 으레 뒤를 따라온다는 사실이다. 큰 길에서 달은 따라오지 않는데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골목길을 걸어갈 때는 으레 집까지 따라온다. 어릴 적 기억엔 그렇다. 그러고 보면 달은 마음이 가난한 자를 어루만지는 위로의 손길 같기도 하다. 그러기에 이백도 그렇게 노래한 것이리라.

이런 생각을 훼방 놓는 것은 냉랭한 과학이라는 것이다. 어느 날 외계에서 커다란 혜성이 지구를 세게 스쳤는데 그때 지구의 한 부분이 떨어져나가 다른 별 조각들과 합쳐져서 달이 되었다든가 하는 설명. 우주적인 우연에 의해서 저 달이 생겼다는 말이 과학적 사실이라는데 나는 크게 실망한다.

낮에는 태양이, 밤에는 달이, 이런 조화가 우연히 생겨났다는 것은 과학적으로는 맞는 말이라 쳐도 달은 나에게는 대우주의 시적인 작품처럼 보이는 것이다. 아니, 달은 시인만이 아니라 시심을 가진 모든 사람들의 소유물이라 해야 될지 모르겠다. 어떤 말로도 형용이 모자라는 저 하늘을 건너가는 달의 행로에 나는 경이, 경외심을 갖는다.

지구와 달은 짝하여 운행하면서 태양이 인간의 행동을 비춘다면 달은 인간의 마음을 엿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밤잠을 깨운 달의 하얀 손이 창을 통과해 뻗어와 침대를 더듬는다. 달의 손을 잡는다. 달은, 누가 그랬다, 바다와 한번 인연을 맺으면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고, 어찌 바다뿐이겠는가.

나도 달과 이 밤에 무슨 맹세 같은 것이라도 하고 싶다. 멀리 있는 달아, 나는 너를 그리는 마음을 품었다가 언젠가는 그 마음을 내어놓을 과객(過客)이란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밤마다 내 마음 속에 놀러와 천 년 만 년 네가 본 이야기를 들려다오. 사람들이 어떻게 살다가 갔는지, 한 목숨의 행로는 얼마나 슬픈 것인지.

문틈 시인  newstoktok@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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