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수 사진작가

경제난으로 팍팍하고 고난한 삶을 열정으로 끌어올리고 마침내 진흙 속에서 고귀하고 찬란함을 피우는 게 연꽃이다. 다른 말로는 수련이라고 한다.

빅토리아 연꽃이 활짝 필 무렵 수면에 반사된 불빛 주변이 황홀함을 더해주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수는 물(水)가 아니라 잠잘 수(睡)자를 쓴다, 낮엔 자고 밤에 꽃을 피워 자태를 한껏 발산한다는 의미에서다. 이름 하여 ‘빅토리아 연꽃’이다. 우리 말로는 '큰 가시연꽃'으로 불린다.

빅토리아 연꽃이 여왕다운 모습을 보이기 2시간 전인 오후 6시께 자주색으로 변해가는 모습

빅토리아 수련의 태생지는 아마존 강 유역이다. 영국의 전성기를 이룬 빅토리아 여왕(재위 1837~1901) 시절 이 꽃을 아마존에서 영국으로 가져와 키웠고, 당시 처음 피운 꽃을 여왕 생일 때 헌정했다고 한다. 영국의 식물학자 존 린들리가 빅토리아 여왕을 기념해 'Victoria regia'로 학명을 붙인 뒤 ‘빅토리아’란 이름으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

뭐라해도 빅토리아 수련의 백미는 3일에 걸쳐 피는 꽃의 개화시기와 관련이 깊다.

첫날엔 흰색으로 피어난다. 둘째 날은 분홍색으로 변한다. 셋째 날은 자주색으로 점점 변하면서 만개한다. 이때의 꽃모양이 꼭 왕관처럼 생겼다 해서 ‘빅토리아 왕관’이라 부른다. 다음 날엔 꽃이 지면서 물속으로 가라앉으며 짧고도 짧은 생명을 마감한다.
화려함의 극치에서 서서히 물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덧없이 사그라지는 온갖 권력과 부귀영화를 연상해본다.

빅토리아 연꽃이 만개한 다음날 여명이 떠오르면서 하얀색으로 비친 연꽃

잎도 열대지역 식물이어서 그런지 크기가 2m를 넘는다. 다 자라면 어린아이가 앉아도 될 정도로 넓게 펼쳐진다.

사진을 촬영한 정병수 작가도 빅토리아 왕관을 찍기 위해 고행의 길을 걸어야 했다. 3년 동안 매번 무안의 회산연꽃방죽을 찾아 나섰지만 실패했다. 빅토리아 왕관을 보는 것은 올해가 처음이란다. 밤새 촬영 후 차속에서 잠을 자고 다음날 여명을 바라보게 되면 과연 ‘꽃중의 꽃’ 답고 여왕에게 바칠만한 꽃이 로구나 감탄했다는 것이다.

첫날 피어난 밤 10시께 햐얀꽃으로 자태를 드러낸 첫 모습

그도 그럴 것이 세속에 찌든 진흙 속 에서도 한 순간의 화려함을 보여주기 위해 정열을 불태우는 과정이나 3일째 되던 달 곱디고운 자태로 절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정병수 사진작가

그리고는 다음날 세속의 욕망을 뒤로하고 사라지는 꽃을 여왕이라고 불러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고 말이다.

권력 앞에서 온갖 비리와 추태를 부리는 우리의 현실과 비교하면 빅토리아 연꽃 앞에선 너무도 부끄럽기 짝이 없다. . .

        박병모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